추석 즈음 시장에 나오는 사과를 샀다가 밍밍하고 퍽퍽해서 실망한 적이 많았을 거다. 겉은 빨갛고 예쁜데 막상 깎아보면 무맛에 가까운 사과들. 이제 품종 이름을 확인하고 고를 때가 됐다. 요즘 과일 매대에서 조금씩 이름을 알리고 있는 ‘이지플’을 고르면 실패가 줄어든다.
이 사과는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국산 신품종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맛없는 홍로에 지친 사람들에게 좋은 대안이다. 평균 당도가 16.7브릭스(°Bx)로 추석 사과의 대명사인 홍로보다 높다. 여기에 산도 0.41%가 절묘하게 맞물려 있다. 그냥 달기만 한 게 아니라 새콤한 맛이 뒤에서 쳐주니까 맛의 깊이가 다르다. 과육도 단단해서 씹을 때 사각거리는 소리가 거실에 울릴 정도다.
홍로와 감홍을 교배해 만든 품종으로, 당도와 식감이 특징이다
이지플은 이름에서 힌트가 나온다. ‘쉬운(Easy)’과 ‘사과(Apple)’를 합친 이름이다. 농가 입장에서는 키우기 쉽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편하게 맛있는 사과를 먹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사과는 부모의 장점만 쏙 빼닮았다. 겉모양은 매끈하고 예쁜 ‘홍로’를 닮았고, 속 깊은 맛은 매니아층이 탄탄한 프리미엄 사과 ‘감홍’을 닮았다.
과일의 맛은 단순히 설탕물 같은 단맛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단맛과 신맛의 비율, 즉 당산비가 핵심이다. 이지플은 16.7브릭스의 높은 당도에 0.41%의 산도가 섞여 있다. 귤을 먹을 때 싱거운 귤과 새콤달콤 진한 귤의 차이를 생각하면 쉽다. 입에 넣자마자 침샘이 확 고이면서 단맛이 밀려온다.
식감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과육이 아주 치밀하고 단단하다. 잘 익은 이지플을 칼로 자를 때 서랍장 모서리에 단단한 연필을 대고 깎는 것처럼 사각하고 묵직한 저항감이 느껴진다. 물렁하게 씹히는 사과를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이만한 선택지가 없다.
홍로, 감홍, 시나노골드와 한눈에 비교하기
사과를 사러 가면 머리가 아프다. 빨간 사과, 노란 사과가 섞여 있고 이름도 제각각이다. 내가 지금 사려는 타이밍과 입맛에 맞는 사과가 무엇인지 비교해 보면 판단이 쉬워진다.
9월 상순에 나오는 대표적인 추석 사과다. 껍질이 새빨갛고 모양이 예뻐서 선물용으로 많이 쓰인다. 하지만 단점이 명확하다. 식감이 다소 퍽퍽해지기 쉽고, 당도가 이지플보다 떨어진다. 이지플은 홍로와 나오는 시기(9월 상·중순)는 겹치면서도 무게가 평균 338g으로 홍로(282g)보다 묵직하고 맛은 훨씬 진하다.
- 홍로 (추석의 절대강자, 하지만 아쉬운 맛)
이지플의 부모 품종이다. 맛으로는 사과 중에 으뜸으로 꼽히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재배가 너무 까다롭고 사과 표면에 거뭇거뭇하고 거친 ‘동록’이 잘 생긴다. 마치 가을철 거칠어진 손등처럼 껍질이 지저분해 보이기 쉽다. 이지플은 이 감홍의 진한 맛을 물려받으면서도 껍질이 깨끗하고 붉게 잘 익도록 개선되었다.
- 감홍 (맛은 최고, 못생긴 피부)
황금빛 사과로 인기가 높은 품종이다. 새콤한 맛이 강하고 아삭해서 매니아가 많다. 하지만 수확 시기가 다르다. 시나노골드는 10월 말부터 11월에 나오는 만생종에 가깝다. 추석 즈음인 9월에는 제대로 익은 시나노골드를 맛보기 어렵다. 또한 시나노골드는 시간이 지날수록 신맛이 빠지면서 부드러워지는데, 이지플은 수확 직후부터 단맛과 신맛의 균형이 꽉 잡혀 있다.
- 시나노골드 (노란 청량함, 늦은 수확)
| 구분 | 이지플 | 홍로 | 감홍 | 시나노골드 |
|---|---|---|---|---|
| 수확 시기 | 9월 상순 ~ 중순 | 9월 상순 | 10월 상순 | 10월 하순 ~ 11월 |
| 평균 무게 | 약 338g (대과) | 약 282g | 약 350~400g | 약 350g |
| 맛의 특징 | 진한 새콤달콤함 (당도 16.7Brix) | 단조로운 단맛 | 깊고 풍부한 맛 | 청량한 신맛과 단맛 |
| 식감 | 아주 단단하고 아삭함 | 다소 퍽퍽해지기 쉬움 | 아삭하고 치밀함 | 단단하고 즙이 많음 |
| 외관 | 균일하고 붉은빛 | 새빨갛고 예쁨 | 거칠고 어두운 붉은빛 | 밝은 노란색 |
온난화 시대에 붉은색을 지켜낸 과학
왜 갑자기 이지플 같은 신품종이 쏟아져 나올까? 기후변화 때문이다. 사과는 밤낮의 기온 차가 커야 껍질에 붉은색이 예쁘게 돈다. 그런데 요즘 늦여름과 초가을은 지나치게 덥다. 그러다 보니 기존 홍로 같은 품종은 추석이 다 되어도 벌겋게 색이 안 들고 푸르스름하게 남는 문제가 생겼다. 농가에서는 색을 내려고 인위적인 착색제를 뿌리거나 바닥에 반사판을 깔아 햇빛을 억지로 비추기도 한다.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사과연구센터에 따르면, 이지플은 이런 고온 스트레스에 아주 강하다. 더운 날씨에도 스스로 붉은빛을 잘 만들어낸다. 게다가 탄저병 같은 여름철 단골 병해충에도 강하다. 농부들이 땀 흘리며 억지로 색을 입히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잘 익는다는 뜻이다.
가지가 지나치게 뻗지 않고 잎이 사과를 가리는 일이 적어서 햇빛을 골고루 받는다. 나무 스스로 열매를 솎아내는 성질(자가 적과성)도 있어서 손도 덜 간다. 기후가 변해도 품질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사과가 이렇게 우리 식탁에 올라오게 된 셈이다.
실패 없이 고르고 맛있게 먹는 법
지금 마트나 인터넷 직거래로 이지플 사과를 고른다면 딱 두 가지만 기억하자.
첫째, 무조건 얼굴만큼 큰 사과를 고집하지 마라. 이지플은 품종 특성상 과일이 너무 크게 자라면 꼭지 부분이 벌어지면서 스스로 가지를 밀어내 떨어질 우려가 있다. 너무 큰 대과는 저장성이 떨어지고 속이 푸석해질 수 있다. 내 주먹보다 조금 더 큰 정도, 대략 300g 초중반 무게의 단단한 개체를 고르면 맛과 저장성 면에서 가장 안전하다.
둘째, 만져봤을 때 돌덩이처럼 단단한 것을 골라라. 이지플은 껍질이 다소 두껍고 조직이 치밀해서 상온에서도 20일 정도 버틴다. 하지만 아삭아삭한 과즙을 100% 느끼려면 사 오자마자 신문지나 랩으로 하나씩 감싸 냉장고 신선칸에 넣는 것이 좋다. 껍질이 두꺼운 편이라 껍질째 먹을 때는 씹는 맛이 강하게 느껴질 수 있으니, 이 식감이 낯설다면 얇게 깎아서 차갑게 낸 뒤 바로 입에 넣자. 묵직한 단맛이 입안을 가득 채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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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1] 기관 농(農)영상 | 농사로 · nongsaro.go.kr
- [2] 기관 보도자료 | 과학원소식 | 기관소개 | 홈 · nihhs.go.kr
- [3] 기사 사과 대란 해결책 신품종 이지플 ‘주목’ · cctoday.co.kr
- [4] 기사 추석 사과 ‘홍로’ 뒤잇는 아리수·이지플…국내 육성 품종 확대 · dailian.co.kr
- [5] 기사 Shinano Gold – Valuablelink Consulting Inc. · valuablelink.ca
